CJ그룹의 브랜드, 마케팅을 총괄했던 노희영씨가 브랜딩 법칙이라는 책을 냈다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유명한 브랜드-제품 및 서비스를 기획했던 그녀는 어떤 생각을 갖고있을지 궁금했다.
책의 제목은 저자가 직접 지었을지는 의문이다. 브랜딩의 법칙을 언급한 내용은 아니기에, 차라리 "노희영의 브랜딩 철학"이 더 알맞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노희영'이라는 브랜드를 위한 브랜딩 요소라고 볼 수 있다. 각 챕터에 담긴 저자의 브랜딩 철학이 핵심이지, 소개되는 여러 브랜드별 브랜딩 전략이 자세히 다뤄지진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가 풀어낸 스토리와 그 안에 담긴 생각에 대해 짤막히 정리해본다. 이 책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참고할 수 있는 수준으로 언급해보고자 한다.
성공한 브랜드라는 훈장은 결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일은 좌절과 투쟁 그리고 고집의 결과였다. 심지어 30년간 브랜드를 만들어온 지금도 여전히 브랜딩은 어렵고 조심스럽다.
하나의 인격체처럼 브랜드를 다루는 입장에서 본다면, 한 사람을 만들어내고 육아를 하여 사회에서 스스로 목표로하는 바대로 살아가도록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브랜드가 속한 사회 안에서 본인이 갖고 있는 사회적 가치를, 관계된 사람들 또는 기업들에게 제공하기 위해서는 경쟁력을 갖춰야 하고, 전략적으로 생각하여 효율적으로 생활하고, 끈기를 갖고 결과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저자가 브랜딩에 대해 결론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진정성이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에 있어서도 진정성이 있겠지만, 저자의 일에 대한 몰입, 집요함, 고집이 브랜드에 진정성을 담기게 하는 요소가 아닐까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내가 깨달은 한 가지는 '브랜딩이란 소비자와 진심으로 소통하며 진정성을 가지고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이라는 점이다.
정성이 없고 고민을 거치지 않은 브랜드의 제품은 소비자에게 외면받기 마련이다. 그러니 소비자가 나의 브랜드를 어떻게 평가하더라도 결국 나의 진심과 진정성이 부족했음을 겸허히 인정하고 묵묵히 브랜드를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이 책의 집필 의도는 브랜드와 관련된 일을 할 때뿐 아니라 퍼스널 브랜딩을 할 때나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어떻게 접근하고 도전해야 하는지 그 해답을 주기 위해서라고 언급하고 있다.
즉,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에 이 책에 담긴 본인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이 시련 속에서도 자신을 갈고닦아 제대로 세상에 덤비는 싸움닭이 되길 바라는 점이다.
타겟은 우리나라의 기획자, 마케터, 영업자, 디자이너, 자영업자, 열정이 넘치는 젊은이들로 삼았다.
마켓오
레스토랑 마켓오의 브랜드 컨셉이 어떻게 시작했는지 알 수 있는 내용이다. 마켓 Market은 레스토랑을 넘어 유기농 마켓으로의 확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름에 넣었다고 하고, 오 O는 숫자 '0'과 'Orgarnic'을 함축한 단어라고 한다. Zero는 무해한 것이 없다는 의미와 한 없이 가득하다는 Full의 의미를 내포하여 건강하고 좋은 것으로 가득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단다. 그리고 식재료로는 유기농이 핵심이었다.
현재는 레스토랑이 확장하지 못하고 처음에 있던 압구정동과 도곡동 자리에만 머물러 있는 수준이고, 마켓오라는 브랜드는 과자 카테고리 중심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인 것 같지만, 마켓오 브랜드를 인수한 회사가 과자 회사인 오리온이었으니, 브랜드 확장의 대상이 과자류가 될 수밖에 없었던 제약을 예상해보면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롤로이의 최애 과자 중 하나가 '마켓오 리얼 브라우니'일 정도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품질로 맛이 매우 뛰어나다. 초기 브랜드의 컨셉과 거리가 멀지만, 공장에서 찍어내지 않은 듯한 수제 컨셉만큼은 이어져나가고 있다고 본다.
브랜딩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차별화와 집요한 고집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는 챕터라고 본다.
지금의 제품 개발은 소비자가 원하는 것에서 한 단계 발전한 것을 찾는 것. 소비자가 안 먹어본 것을 창조하는 일은 일종의 발명이다. 먹는 상품에서 발명품은 통하지 않는다.
당신 같으면 이걸 일주일에 몇 번이나 먹을 것 같아요?
비비고
워낙 유명한 일화라 직접 들어보고싶은 생각이 강했던 파트다. 과연 저자가 비비고 HMR 제품, 특히 '왕교자' 출시에 얼마나 관여를 했고, 방향성을 가져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조심스럽게 레스토랑 비즈니스에 초점을 더 맞춰왔던 것은 아닐까라는 예측도 해본다. 왜냐하면 필자의 기억이 맞다면, 비비고 이전에 백설 브랜드로 (군)만두류가 이미 존재했었고,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해태 고향만두와 1, 2위 자리를 다투고 있던 브랜드-제품이었다. 리서치를 해봐도 CJ제일제당의 백설 군만두의 맛에 매료되어 있던 고객층이 두터웠으니. 이 책에서 언급되는 비비고 만두는, 백설 브랜드가 비비고 브랜드로 전환되며 추가된 '왕교자'로 보인다. 아니면 미국 시장용 만두, 완탕일 수도 있겠다. 이 부분은 기대했던 기획이나 마케팅 전략이 모호한 점은 아쉽다. CJ제당에 있었던 지인이 노희영 고문과 함께 일하며 배워나간 내용을 들은 적이 있었기에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기대했지만, 브랜딩에 대한 내용 보다는 비비고를 개발한 시절의 CJ제당 일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도 이 한 마디는 공감한다.
브랜드를 키우는 것은 아이를 기르는 것과 같다.
브랜드를 하나의 인격체라고 생각한다면, 그의 이름을 짓고 가치 체계를 세우고 성격을 규정해서,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해나가며, 어떤 이미지를 갖게 할 것인지. 이 과정을 만들어 가는 것이 협의의 브랜딩이라고 본다.
세상의 모든 아침
'세모아'라는 레스토랑은 들어보거나 가본 적이 없어서 이 책에서 궁금한 부분이었다. 과연 데스티네이션 플레이스 destination place를 기획하기 위한, 확실한 콘셉트와 와우 이펙트 wow effect가 무엇이었을까?
"세상의 모든 아침"은 (주)더스카이팜에서 운영하는 브랜드다. 저자가 처음 기획했을 때, 하늘에 가까운 농장이라는 의미로, 전경련 회관 50층, 51층 전체 공간의 명칭을 '더 스카이 팜'으로 정했는데, 그것이 법인명이 되었다. 알고보니 우리 주변에 쉽게 볼 수 있는 '후라이드 참 잘하는 집'도 갖고있는 가맹본사였다.
"세상의 모든 아침"은 현재 여의도 전경련 회관뿐만 아니라 광고 앨리웨이, 롯데월드몰 (세상의 모든 아침 for me)에서 만나볼 수 있는 all day brunch dining 레스토랑을 표방하는 브랜드이다.
저자가 요약하는 성공 요인은 바로 "콘셉트"라고 한다. 브랜드의 이름과 브랜드의 분위기가 젊은 여성 소비자들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고 한다.
마케팅은 '백 코에 한 코'라고 생각한다. 뜨개 바느질에 비유한 말인데, 백 번 행동했을 때 그중 하나가 얻어걸릴 수 있다는 의미다. 나는 마케팅에는 전략이 없다고 생각한다. 백 코를 떴을 때 그 백 코는 노력을 의미하며, 그 노력은 운이 아니다. 그리고 그중 한 코가 걸리는 게 마케팅이다.
브랜드에 뉴욕, 파리의 세련된 느낌이 아닌, 넉넉함이 담긴 따뜻한 가정식 이미지를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테리어와 식기, 직원 유니폼에 그런 임지를 그대로 녹이려 했다.
세상의 모든 아침에서는 할머니와 어머니가 물려주신 것 같은, 집안에서 대대로 쓰던 접시 같아 보이는 꽃무늬 그릇을 과감하게 사용했다. 그래서 음식이 놓인 테이블을 보면 흡사 유럽 어느 작은 식당의 느낌이 든다.
유럽풍의 소녀스러운 직원 유니폼도 브랜드 이미지에 한몫했을 것이다.
5년 전 '한 코'는 인플루언서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유명 인플루언서들이 다녀가고 그들의 인스타그램에 예쁜 사진과 글이 올라간 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전망이 좋고, 예쁜 그릇과 산뜻한 인테리어로 SNS에 올리기 위한, 한 번 가볼만한 장소로 평가될 것인지, 한 번도 안 간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본 사람은 없는 장소가 될 것인지는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저자가 주주이자 고문 역할을 맡고 있는 브랜드-레스토랑이기에 원기획자의 지속적인 관리가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광해
역시 브랜드 전문가는 영역을 가리지 않는다. 브랜드의 실체가 되는 제품, 서비스 상품에 대해서는 시간을 갖고 공부하여, 브랜드라는 인격체와 관계를 맺는 고객 및 사회(시장)을 엮어나가는 것이 브랜딩이 아닐까.
디자인을 전공하고, 공간 디자인에서 레스토랑 브랜드, 브랜드 컨셉 기획, 브랜드 확장에 따른 제품 마케팅으로 이력을 쌓아온 저자가 영화 마케팅까지 응용력을 발휘했다는 점에 놀랐다. 그래서 "광해"와 "명량" 파트에도 큰 관심이 갔다. 독자들에게 어떤 인사이트 insight를 던져주는가 궁금했다.
일단 이러한 영역까지 확장할 수 있었던 기회는 CJ그룹에서 마케팅 전반을 관리하는 위치에 있었던 시절로 보인다. 광해라는 영화를 광고하는 내용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미디어 커머스처럼 영화라는 플랫폼을 통해 회사의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하고 광고하는 부분은 '광해' 입장에서는 별로 도움되는 일이 아니었을 것 같으니.
마케팅은 누가 그것을 회자시키느냐에 따라서 승패가 결정된다. 이슈메이커들이 영화를 관람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데, "광해"가 개봉한 시기는 선거철이었으니 정치인들이 모든 이슈를 선점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들에게 어필해야 했다.
영화 개봉일이나 상품 출시일을 미리 정해놓았다 하더라도, 이슈는 매 순간 변한다. 따라서 새로운 마케팅을 시의적절하게 해야 한다. 특히 영화의 경우, 개봉 시기의 이슈를 잡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다행히 "광해"는 그것이 잘 맞았다.
"광해"는 1,200만 관객을 동원하며 CJ그룹의 명예를 회복시킨 작품이 되었는데, 이것을 마케팅하는데 관여한 저자의 전략이 효과를 발휘했다고 한다. "광해"의 성공 이후, 회사에서는 더 이상 저자가 영화 일에 관여하는 것에 더는 말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노희영'이라는 리더의 모습
저자는, 사람들이 본인을 '마녀'라고 부른다고 한다. 차가운 말투와 매서운 표정에서 시작된 별명이라고 한다. 눈을 감으나 뜨나 매사에 너무 몰입하는 경향이 있어,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괴로워한다고 자평한다.
사실상 전장에서 대원들을 이끄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나는 고지가 보이면, 앞뒤 가리지 않고 대원들에게 '뛰어!'라고 외친다.
장군이 전장에서 대원들의 사소한 부상을 다 헤아리면 전진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나의 태도로 상처받은 직원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악명 높았던 저자가 책의 끝부분에서는 그동안의 행동에 대해 후회한다고 서술한다.
리더라면 사업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를 제외하면, 늘 직원들을 살뜰히 보살피고 그들에게 '나는 너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표현을 충분히 해야 한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직원이 '리더가 나를 신경 쓰고, 챙기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한다.
"광해"의 '연민'을 제시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광해"의 흥행 비밀은 사람들이 늘 광해군과 같은 리더십을 원한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리더와 함께할 때, 직원들은 괴롭고 힘든 상황도 견뎌낸다. 그러니 직원들을 연민으로 돌보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게 리더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니겠는가.
책의 끝부분에서는 독자들에게 몇 가지 조언을 남기고 있다.
비평가가 아닌, "How to"를 아는 전략가가 되어라.
최선을 다하는 기준은 '시장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조직의 뜻을 따르면서도 주도적으로 현명하게 일하는 방법은, 리더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한 후에 일을 추진하는 것.
조직은 씨실과 날실의 결합이다. 좌우상하가 다 같이 통해야 한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 팀워크.
언젠가 시니어층에 대한 일을 하면서 저자, 노희영씨를 만나게 되는 날이 오면 좋을 것 같다. 굵직 굵직한 프로젝트를 맡으며, 다양한 관계망을 갖추고, 몰입하여 체득한 인사이트로 어떤 기획을 펼쳐낼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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