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사회 진입에 대한 관심으로, 치매에 대한 언급도 했고 이번에는 시니어 그룹에 대한 마케팅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 글은 과거 LG경제연구소에서 작성한 칼럼, '시니어 마케팅의 출발점'의 내용을 소개하고, 7년이 지난 콘텐츠가 오늘날에도 통하는 인사이트를 담고 있을지 살펴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라고 본다.
1990년대 우리나라 경제가 호황기에 있을때부터 실버 시장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했고, 당시에는 전원주택과 건강식품을 위주로 시장이 형성되었다. 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겪은 후, 반짝 떴던 실버 시장은 허물어졌다.
통계청의 2010년 조사에 따르면 30대의 주택 보유 비율은 40%를 밑도나, 50대는 70%에 육박하고, 60대 이상은 70%를 넘어선다. 2019년 11월에 발표된 2018년 주택소유통계에 따르면, 가구주 30대의 주택소유율은 42.1%, 50대 63.1%, 60대 이상은 67.2%로 나타나고 있다.
2012년, 가계 금융 복지 조사에 따르면 30대의 자산은 2억 2천만 원선인데 비해, 50대는 4억 2천만 원, 60대 이상은 3억 원으로 나타났다고 하는데, 2019년 자료를 보면 30대의 자산 평균은 3억 2천638만 원, 50대 4억 9천345만 원, 60대 이상은 4억 2천만 원선이다.
중노년층의 이 같은 재산 보유는 소비 여력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으나, 한편으로는 은퇴 후 당장 소득이 줄어들거나 없어졌기에, 자산이 소비로 연결되기 힘든 면도 있다. 즉, 시니어 소비자는 돈이 있으면서도 쓰지 못하는 존재다. 시니어 마케팅의 기본 방향은 이 같은 시니어 소비자의 특수한 상황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시니어 마케팅은 과거의 실버 마케팅과 본질적으로는 유사하나, 좀 더 폭넓고 새로운 관점을 지니고 있다.
실버 마케팅과 시니어 마케팅
두 가지 사항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니어 마케팅이 대상으로 삼는 소비자와 제품의 폭이 더 넓다. 과거 실버 마케팅은 경제 호황기를 반영하듯 낭만주의적 소비 개념을 지니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전원주택이다. 당시 전원주택들의 가격은 서울의 중형 아파트 가격을 훌쩍 넘었다. 그러나 환금성 등 전원주택이 가지고 있는 단점들이 부각되고 중장년층들이 낭만보다는 현실을 선택하면서 전원주택은 인기를 잃었다. 그 뒤로 실버타운이 반짝 인기를 얻는 듯했으나 이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시니어 마케팅은 실버 마케팅에 비해 좀더 생존주의적 경향을 띠고 있다. 2010년대에 시니어 마케팅의 핵심이 되고 있는 상품들이 보험과 아웃도어 의류라는 사실에서도 이 같은 경향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과거 보험 상품은 자신의 유고 시에 가족들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측면이 강해서, 자녀들이 성장한 중년층 이상은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다. 그러나, 요즘의 보험은 가족이 아니라 본인을 위한 성격이 강하다. 수명은 늘어나는데 의료비 등의 걱정이 커진 중노년층은 연령이 높아짐에 따라 비싸진 가격에도 가입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2012년 우리나라 아웃도어 의류 및 용품 시장 규모의 업계 추정치는 5조 8000억 원이었고, 2006년 1조 2000억 원에서 6년 동안 5배 가까이 늘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시장 규모가 되었다. 2019년은 어떠한가? LG경제연구소가 해당 주제를 분석하던 시기와 큰 변화를 겪었다. 국내 아웃도어 시장은 2000년대 후반부터 폭발적인 성장을 보이면서 국내 패션 시장의 큰 축으로 자리매김했다. 삼성패션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아웃도어 어패럴 시장규모는 2005년 1조 원대였으나 2010년 3조 원대로 성장했고 2014년 7조 원까지 성장했다. 이러한 성장에는 중장년층의 '등산 붐'과 1020세대의 '점퍼 붐' 영향이 존재했다. 특히 중장년층들이 등산복을 일상복으로 활용하면서 아웃도어 시장의 성장을 부추겼다. 해외여행지에서도 등산복 입은 중장년층을 쉽게 볼 수 있었던 때다. 핵심 구매층으로 떠올랐던 중장년, 시니어 소비자들은 아웃도어 의류를 구매한 이유로서 편안하고 멋있으면서 오래 입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점, 아웃도어 의류를 사면 운동을 많이 해서 건강해질 것 같다는 막연한 안도감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잠깐 아웃도어 시장에 대해 마저 이야기하면, 2014년을 정점으로 시장은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구매주기가 긴 등산화, 배낭, 텐트 등 용품의 매출이 크게 줄었고, 지나친 등산복 패션으로 일상복으로서의 활용과 호응도가 떨어졌다. 퍼포먼스 제품들도 실용주의적인 소비로 인해 객단가가 떨어졌다. 시니어층은 아니지만 1020세대의 이탈도 시장 축소에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2018년 시장규모는 4조 원 아래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2020년은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위축의 기울기가 더 가팔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시니어 소비자의 특성
2013년 당시 파악한 시니어 소비자의 특성을 살펴보자. 미국 시장의 경우다. 우리나라 시니어 소비자에게도 적용 가능한 인사이트라고 판단된다.
1) 상품을 구매할 때 신뢰(Trust)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젊은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욱 신뢰를 중시하고, 한 번 형성된 신뢰는 더 오래 지속된다는 특징을 보인다.
2)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데 보수적이다.
어떤 물건을 잘못 구매하거나 계약하여 금전적 손실을 입는 경우, 만회가 쉽지 않기 때문에 매우 조심한다.
3) 비교 구매에 열심이다.
가격에 민감하고, 리스크를 줄이려는 생각도 강하다. 여유 시간이 많기 때문에 정보 수집이 용이하다. 중노년층은 뉴스를 열심히 보기 때문에 생각보다 기초 정보가 많다.
시니어 소비자의 내적 고민
50대 후반 ~ 60대 초반의 남성들 소수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였고, 이를 통해 도출한 몇 가지 심리 요소를 정리하였다. 대표성 있는 추가 조사가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60세 전후의 남성들이 갖는 consumer insight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리라 예상해본다. 시니어 마케팅을 고려하는 사람들에게는 흥미롭고 의미 있는 요소가 될 것이다.
시간의 내적 지체 현상
시니어 소비자들은 대체로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낯선 사람을 만날 때 자신보다 나이 들어 보인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30대, 40대에도 느낀 적이 있었으나, 50대를 넘어가면서 본격화되었다는 것이다. 정서적으로 자신을 젊게 인식하는 이러한 현상은 물리적 시간의 흐름에 정신적 향상성을 유지하려는 경향이라고 할 수도 있다. 시니어 소비자들은 자신의 나이를 실제 나이보다 6-12년 젊게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적 시간의 지체 현상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만한 자신의 나이에 대한 인식 불일치는 더 젊어지고 싶다는 욕구와 함께,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나이 들게 본다는 사실을 상쇄할만한 자신감을 줄 수 있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찾는 욕구로 이어지게 된다. (서드베리 Sudbury와 심콕 Simcock, 2009년)
말하기 싫은 속사정
나이가 들면 배가 나오거나 눈이 침침해지는 등 육체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원래 특수 체형이었던 사람은 중년이 되면서 그 특징이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육체적 문제는 옷을 살 때 분명 고려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지만, 판매원에게 이야기하기는 싫다는 것이 중노년층 소비자들의 이야기다. 시니어 마케팅에서는 중노년층 소비자들의 가려운 구석을 파악하는 것을 넘어서, 그것을 쑥스럽지 않게 해결해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복잡함에 지쳐간다.
시니어 소비자들은 복잡한 마케팅 프로그램에 머리 아파하고 있다. 대체로 무시하면서 살지만, 할인이나 포인트를 못 받았다는 것을 알 때 기분이 나쁘다는 응답도 있었다. 특히, 복잡한 통신 상품이나 신용카드의 각종 할인 제도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자주 찾는 한식당마저도 소셜 커머스 등을 통해 할인을 해주는 등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 난감해하며 아쉬워하는 마음이 커져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운 옛날, 그러나 뒤쳐지기 싫은
예부터 중노년층 소비의 한 축은 향수다. 왕년의 젊은 시절 즐겨했던 상품이나 서비스는 누구에게나 언제까지나 좋은 법이다. 옛날이 편안하지만, 새로운 것도 써보고 싶다는 게 시니어 소비자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새로운 것들 중 불필요한 게 너무 많아서 의미 있는 것만 배우고 적응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나오는 것으로 볼 때, 시니어 소비자들이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해보고 싶다는 것은 새로운 게 진정으로 좋아서라기보다는 시대에 뒤쳐지기 싫어서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좋든 싫든 시니어 소비자들이 하이테크 제품을 구매한 후, 나름 잘 사용하는 자신을 볼 때는 자존감이 살아나고 기분이 좋은 반면,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을 때는 속상해한다. 상품 판매를 넘어 고객 경험 관점에서의 면밀히 살펴드려야 하는 부분이라고 본다.
진짜 100세까지 살면 어떡하지
통계자료를 찾아보면 다양한 주제들이 많다는데 놀라게 된다. '노후준비지표'도 있었구나! e-나라지표에 가면 첨부 자료와 같은 노후준비 여부, 방법을 물은 통계지표를 볼 수 있다.
LG경제연구소의 필자가 시니어 마케팅 관련 내용을 작성하던 시기에는 40~50대의 노후준비율이 45%에 불과하다고 했다. 당시 '노후준비지표'를 개발하던 시점이라 첨부 자료와 수치는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국민연금'에 대한 비중이 높을 뿐, 그 외 노후준비를 위한 방법으로써 활용하는 것은 비율이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준비하고 있음'이라고 답했지만, 강제가입식인 국민연금을 포함하고 있기에 '준비율'이 높은 것은 아닐까.
인터뷰어 중 국민 평균 자산의 3~4배를 보유한 경우에도 노후에 대해 상당한 경제적 불안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들이 갖고 있는 불안의 핵심은 여명 기간이 얼마나 길 것인지, 금융 자산이 안전하게 보존될 것인지 등이었다. 특히, 여명 기간이 길어질수록 세계 경제 불안정성, 각종 자연재해 등 금융 자산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요인도 많아질 텐데, 어떻게 이를 무사히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는 것이다. 인공 장기 등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수단이 곧바로 건강 관련 지출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 미래에 대한 걱정을 키우는 측면도 있었다.
휘발성 지출 줄이면서 자존심 살리기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시니어 소비자는 불필요한 소비는 극도로 줄이는 생존주의적 라이프스타일을 택할 수도 있으나, 시니어 소비자들은 상당 수준 자존심이나 체면을 중시하는 소비 행태를 취하고 있고, 앞으로도 이러한 자존적 소비가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세부적인 면에서 돈이 덜 드는 자존형 소비를 계속 찾아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고급 자동차보다는 럭셔리 브랜드의 시계나 소품을 갖는 것이 실속형 자존적 소비다. 아웃도어 용품도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아웃도어 용품은 한번 장만하면 오래 쓸 수 있고, 등산 등의 아웃도어 활동은 골프처럼 매번 비용이 들지도 않는다. 추가 비용 없이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옷이 좀 비싸더라도 돈을 들일 만하다는 것이다. 아웃도어 용품 시장에 대한 예측은 달라졌지만, 그 안에 담긴 시니어 그룹의 인사이트는 크게 변하지 않았으리라 본다.
시니어 마케팅에 대한 제언
LG경제연구소, 김재문 수석연구위원이 제안하는 시니어 마케팅은 3가지 요소를 살펴보자.
1. 유니버설 디자인
시니어 소비자들은 자신들에게 적합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원한다. 그렇다고, 드러내 놓고 노인용 상품은 고르기는 싫다. 스스로 나이 들었다고 느끼기 쉽고, 매장에서 노인용 제품을 찾는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도 싫기 때문이다. 어떤 기업은 제품명에 대놓고 '실버'라는 단어를 사용하던데, 이러한 시니어 그룹의 인사이트를 제대로 읽지 못했기 때문 아닐까 한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이 같은 두 마리 토끼를 목표로 한다. 유니버설 디자인이란 다양한 특성을 지닌 사람들을 모두 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의미한다. 유니버설 디자인의 활용은 유형 제품에 그치지 않는다. 서비스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편하고 효율적으로 이용하게 하는데 유니버설 디자인의 개념을 적용할 수 있다. 핸드폰 등 전자 제품에 단순한 유저 인터페이스를 기본으로 탑재한다면, 이 또한 많은 사람들의 편의를 높일 수 있다. 물론, 복잡한 인터페이스를 기본으로 하면서 일부 사용자를 위해 별도의 쉬운 메뉴를 제공할 수도 있겠으나, 이 경우, 단순한 인터페이스를 쓰는 사람은 열등감을 느낄 수 있다. 단순함을 기본으로 하고, 심화 사용자를 위해 복잡한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는 것이 유니버설 디자인의 기본 사상에 충실한 대안일 것이다.
2. 시간을 멈추는 상품
미래에 대한 불안, 빠른 시간에 대한 불편함 등 시니어 소비자의 심리적 성향은 오래가는 상품 선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자동차나 전자제품 같은 내구재라면 한번 사면 고장 없이 오래 쓸 수 있는 제품, 패션 상품이라면 유행을 덜 타거나, 유행이 지나서 사용하더라도 사용할 만한 제품이 요구된다. 시니어 소비자들이 상품에서 이러한 특성을 느끼게 하려면 물리적인 품질을 높이는 것과 함께 브랜드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해야 한다. 내구재의 경우 브랜드에 대한 신뢰는 곧 오래 쓸 수 있다는 기대로 연결된다. 패션 상품의 경우 브랜드에 자부심이 있다면 설사 유행이 지났더라도 다른 사람을 덜 의식하게 된다. 구매 과정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는 충분한 정보 제공이다. 시니어 소비자들은 존중받으려고 하는 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미흡한 정보 제공은 자신을 무시한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시니어 소비자는 고장 등 문제가 발생하는 것에 대한 심리적 두려움이 크다. 이런 이유로 미국의 경우 귀찮은 일이 없음을 뜻하는 ‘Hassle Free’라는 문구가 시니어 마케팅에 흔히 사용되기도 한다. 심리적 부담감이 큰만큼 적절한 서비스를 받았을 때의 만족감 또는 받지 못했을 때의 실망감이 젊은 소비자에 비해 더 크기 때문에 세심한 서비스 관리가 필요하다.
3. 보이지 않는 직접 화법
키 작은 사람들은 몸에 정확히 맞는 사이즈를 찾는 성향이 강해서 자신의 몸에 맞는 옷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드러내 놓고 찾기 싫은 심리적 특성을 보인다. 이 점에 착안한 예시로 '키 작은 남자'라는 인터넷 의류 쇼핑몰을 언급한다. 이 같은 사례는 시니어 마케팅에도 응용해보는 것을 제안한다. 시니어 소비자들의 드러내고 싶지 않은 약점을 해결해주는 상품을 인터넷을 통해 비대면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중노년층의 인터넷 사용률은 계속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채널 접근성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관건은 한번 구매한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고 재구매로 이끌기 위해 필요한 소비자의 가려운 곳을 정확히 긁어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시니어 소비자들을 직접 비즈니스 모델 및 웹사이트 구축 과정에 참여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니어 소비자들은 젊은층이 좋아하는 상품을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좋아한다는 표현이 더 적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들에 적합하게 수정된 상품을 자존감이 상하지 않는 방식으로 편리하게 받아들이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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